아이코리아 아동발달연구원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백조예요’

-긍정적 상호작용 촉진을 위한 가족 음악 프로그램-

                                           아동발달교육연구원 음악영역 정 룻

  아이가 태어나서 최초로 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자녀’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발달적 특성상 유아기는 사회적 관계의 폭이 좁고 청소년기보다 부모의 영향이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정 내에서 부모의 안정된 양육은 개인의 성격을 형성하고 대인관계를 맺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인지, 정서, 행동 등 아동의 전반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중요성을 알기에 부모들은 아이를 잘 양육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육아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아이가 예민한 기질이거나, 발달상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더욱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다.

  이에 아동발달교육연구원에서는 서울시 사회복지 기금 사업으로 발달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의 가족들에게 음악,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가족 간 긍정적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중 아동의 불안과 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진(가명)이와 부, 모, 동생이 함께한 음악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진(가명)이는 예민한 기질로 불안이 높고 짜증이 많으며 화가 날 때 분노 조절이 어려워 폭발하는 모습이 간헐적으로 관찰된다고 보고된 아동이다. 또한 강박증세가 있어 자신이 정한 패턴의 움직임을 반복해야 하며 이러한 모습이 부모 입장에서 아동이 부모에게 순응하지 않는다고 느껴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편 엄마에게 실시한 검사에 따르면 엄마도 다소 우울감을 느끼고 불안이 높은 편이며 짜증을 세련되게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고되었다.

  불안한 엄마들의 양육 행동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엄마의 불안은 자녀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의 원인이 되며, 자녀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은 부정적인 부모-자녀 상호작용과 비일관적인 양육 행동을 야기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불안이 높은 어머니는 자신의 불안으로 인해 자녀의 대처 능력을 의심하며, 이로 인해 자녀에게 과도한 보호와 과도한 간섭, 과도한 통제를 행사한다고 한다. 즉 엄마의 불안은 일차적으로 엄마의 양육에 영향을 미치고 엄마의 양육은 직접적으로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 아동의 불안, 우울, 공격적 행동 등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현진이의 가정은 가족 개개인이 가진 예민함과 불안으로 인해 서로에게 부정적 정서를 환기시키고 스트레스를 가중 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부모는 가족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현진이로부터 촉발된다고 인지하고 있었으며 아동으로 인해 온 가족이 짜증이 나고 지쳐있는 상태라고 느끼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단점이 없고, 현진-부모와의 친밀도보다 현진-동생과의 친밀도를 더 높게 평가하는 등 부모가 아동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현진이는 가정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개개인의 장점을 상기시키고 긍정적인 부분을 다시금 탐색해 볼 수 있는 ‘칭찬 송’, ‘가족 소개 송’, 위로를 위한 ‘괜찮아 송’ 등의 노래 창작 활동과 협력하여 한 곡을 완성하는 구조화된 악기 연주, 아동의 연령대를 고려한 음악 놀이 활동 등을 진행하여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자 하였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부모가 보고한 현진이의 모습과 실제 현진이의 모습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현진이는 음악 프로그램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자신의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하여 과제를 완수할 수 있었고, 짜증이나 예민한 모습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강박적인 행동과 통제하려는 행동은 관찰되었고 시작하기 전에 “재미없겠다”는 부정적 발언을 간헐적으로 하긴 했으나, 이내 활동이 시작되면 높은 관심과 수행율로 비교적 완성도 있는 곡들을 만들고 연주할 수 있었다. 이에 부모는 현진이가 음악 과제를 완성도 있게 수행하자 ‘우와~’ 하며 놀라기도 하였고 박수로 아동을 지지해주는 등 아동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아빠의 적극적인 참여도 가족의 긍정적인 역동을 이끄는 데에 한몫했다. 아빠는 가족 소개 송을 만들 때 ‘우리는 00가족, 행복한 가족,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요, 가끔은 힘들어도 알 수 있어요, 얼마나 00를 사랑하는지’로 완성하였고, 아동을 호명하는 호명 송에서도 ‘애교쟁이, 똑순이, 귀여운, 우유 잘먹는, 흥많은, 예쁜 현진이’ 라며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엄마는 주로 아빠에게 의존하여 곡을 만드는 모습으로 아빠에 비해 다소 소극적인 참여가 관찰되다가 마지막 날 ‘괜찮아 송’을 만들 때 현진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위로로 ‘화내도 괜찮아, 걱정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하며 발표하자 ‘현진아, 현진이가 화내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하고 아동의 생각을 유도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현진이는 ‘화내면 안아줄게, 걱정하면 괜찮아~할게, 울면 뽀뽀해줄게’ 하고 곡을 완성하여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가사로 표현하였고 엄마는 그러겠노라는 다짐의 표현으로 현진이를 포옹해 주었다. 이어서 소리가 아름다운 톤차임이라는 악기로 ‘괜찮아 송’을 연주하며 가창을 하자 현진이가 ‘너무 감동적이예요’ 했는데 개인적으로 놀랍기도 했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치며 밝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현진이네 가족을 보면서 ‘어쩌면 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천천히 살피고, 생각을 들어 주고, 마음을 나누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도 울고, 떼쓰고, 짜증내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이 미숙했기에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씩 인식의 변화가 있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내 아이는 우리 가정을 힘들게 하는 미운 오리 새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백조였음을 깨닫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기를 소망한다.